대법원의 ‘다른 목적으로 수집한 개인정보의 소장 기재는 정당행위' 판결을 보며
인터넷 카페에 유치원 학부모가 올린 악성 글로 극심한 명예훼손과 영업 손실을 입은 유치원 원장이 있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려 했다. 하지만 법률상 민사 소송을 내려면 소장에 상대방의 이름과 주소를 반드시 적어야 한다. 원장은 유치원 입학 당시 학부모가 직접 작성해 제출했던 서류에서 학부모의 개인정보인 이름과 주소를 찾아 변호사에게 전달하여 소장에 기재하도록 하였다. 유치원 원장의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인가.
검찰과 1·2심 법원의 판단은 이랬다. 원장이 확보한 학부모의 주소는 '입학 및 학비 지원금 신청'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집된 것이므로, 이를 개인적인 손해배상 소송에 활용한 것은 당초 목적을 벗어난 오용이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하급심은 원장에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만약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면, 이런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은 지극히 불합리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을 것이다.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의 인적사항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소송을 제기할 때는 모르는 척 주소란을 비워둬야 하고, 이후 법원의 주소보정명령이나 사실조회 절차를 거치는 복잡한 우회로를 강요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합리한 우회로를 무시하고 알고 있는 대로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소장에 적었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형사 처벌을 받는 심각한 모순이 제도적으로 고착될 위험이 있었다.
다행히 대법원은 지난 5월, 이 하급심의 유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2026도171). 대법원은 적법하게 수집된 성명과 주소는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민감정보'가 아니며,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을 행사하기 위해 소장에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라고 판단했다. 소장에 기재된 개인정보가 법원에 의해 안전하게 보관되고, 사건과 무관한 제3자에게 유출될 위험이 적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보의 목적 외 활용이 가져올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성보다, 이를 금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사법 접근성 저하의 폐해가 훨씬 크다는 '이익 형량'의 원칙을 적절히 적용한 것이다.
이 대법원 판결이 가지는 의의는 단순히 한 유치원 원장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가, 국민의 또 다른 기본권인 '재판을 받을 권리'와 충돌할 때 어느 지점에서 절충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이정표다.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는 데이터의 무단 유출과 악용으로부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법 조문을 기계적으로만 해석하여 처벌 범위를 무한정 넓히다 보면, 정당한 사법 절차를 밟으려는 피해자의 손발을 묶는 부작용을 낳는다. 법을 어긴 가해자가 도리어 피해자의 정당한 소송 행위를 '개인정보 침해'라며 고소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가진 의의는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