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판단기준과 시사점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사건의 당사자를 대리하거나 기업으로부터 조사를 의뢰받아 진행하다 보면, 당사자나 회사 담당자로부터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다고 주장하면 성희롱이 인정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특히 성희롱 사건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피해자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동조하는 것으로 오해한 탓일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구제절차에서 피해자에게 사실인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현행 법령과 판례의 태도는 이와 거리가 있다.
1. 법령이 정한 판단의 두 축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호는 직장 내 성희롱을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등으로 정의하고,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한다.
우리 법령과 판례는 성희롱이나 괴롭힘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뿐 아니라,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 피해자의 입장에 있었다면 문제 되는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하였을 것인지를 함께 고려하도록 요구한다. 피해자가 주관적 감정은 중요한 고려 요소이지만, 그것만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왜 '합리적인 사람' 기준인가
이 기준은 성희롱·괴롭힘 판단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다. 피해자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동일한 행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면, 법적 판단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법령과 판례는 피해자가 느낀 감정을 출발점으로 삼되, 피해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 합리적이고 평균적인 사람 역시 유사하게 느낄 만한 행위였는지를 함께 살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사기 피해자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곧바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망행위가 있었는지, 그에 속아 재산 처분이 이루어졌는지를 객관적으로 심사해야 하는 것처럼, 성희롱·괴롭힘도 법률이 정한 요건의 충족 여부를 따져 판단해야 한다.
3.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 편들기'가 아니다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피해자의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처한 사정과 대응의 맥락을 그 처지에서 이해하라는 요청이다. 예컨대 피해자가 즉시 항의하지 못했거나 근무를 계속했다는 사정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
문제가 된 언동의 맥락을 고려하는 것과 사실인정 권한을 일임하는 것은 다르다.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객관적인 정황 증거를 따지는 증거 판단의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4. 반대 방향의 오해 — "의도가 없었다"는 항변
판단 기준이 피해자의 주관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가해자의 주관에도 좌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적인 의도나 괴롭힐 의도가 없었다는 항변만으로 성희롱·괴롭힘이 부정되지 않으며 친밀감의 표시였다거나 교육 목적이었다는 해명도 마찬가지다. .
5. 회사 조사 담당자가 지켜야 할 실무 기준
조사 담당자는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다고하니 인정' 또는 '가해자가 의도가 없었다니고 하니 불인정'이라는 양쪽의 지름길을 모두 경계해야 한다. 집중해야 할 것은 행위의 구체적 내용과 경위, 당사자의 관계와 지위, 행위의 반복성, 그리고 같은 상황에 놓인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다루어야 이후 징계의 정당성이 다투어지거나 기업의 민형사상 책임이 문제될 때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FAQ
Q1. (회사)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다는 사실만으로 행위자를 징계해도 되나요?
A. 위험합니다. 전후 맥락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조사보고서나 징계 관련 서류에 적정하게 기재하며 그에 따라 피해자 보호조치, 장계 수위 결정을 하어야 향후 법적 분쟁에서 방어가 가능합니다.
Q2. (신고인) 제가 느낀 굴욕감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A.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의 경험과 감정은 판단의 중요한 출발점이고, 같은 처지의 평균적인 사람이 비슷하게 느낄 만한 행위라면 행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인정됩니다. 행위의 구체적 내용을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3. (행위자로 지목된 경우)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도 성희롱이 될 수 있나요?
A. 될 수 있습니다. 의도가 아니라 행위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행위의 경위와 맥락은 판단에 고려되므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